
네이버(naver)라는 명칭은 '항해하다'
네이버에서만 확보할 수 있는 양질의 한국어 데이터로 학습한 모델입니다. 맥락을 이해하고 자연스러운 답변을 구사하기 때문에 비즈니스 적용이 용이합니다.각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와 결합하여 기업에 맞는 고객 응대, 개인화 추천, 비즈니스 최적화 등을 수행하는 맞춤형 AI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네이버는 NHN에서 제공하고 있는 인터넷 포털사이트로, 1999년 6월 인터넷 포털비즈 니스를 시작했다. 1997년 이해진, 권혁일, 김보경 등으로 구성된 삼성SDS의 사내 벤처에 서 시작해 분할된 네이버컴 주식회사에서 운영하다가 2000년 한게임과의 합병 후 현재 NHN 주식회사에서 운영하고 있다.
NHN은 Next Human Network의 머리글자이다. 네이버(naver)는 navigate(항해하다)와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er의 합성어이다. 검색 포털인 네이버의 서비스로는 통합검색, 디렉토리, 웹문서는 물론 이미지, 동영상, 리포트, 지도, 사전 검색, 지식iN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회원들에게는 이메일, 카페, 블로그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밖에 온라인 게임 사이트인 한게임, 어린이 전용 포털인 쥬니어네이버, 온라인 기부 포털 해 피빈 등을 운용하고 있다.
처음에 네이버는 검색사이트로 각광받았다. 한국어 검색은 한국형 검색엔진이 뛰어나야한 다는 신념으로 네이버를 만들었으며 검색엔진은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포털사이트에서는 다음과 야후에 밀려 3위를 유지하였다. 그 당시에는 메일은 다음 엔터테이먼트는 야후가 검색은 네이버라는 소리가 있었다. 그러다 2002년 10월부터 시작한 지식in과 광고에 전지 현이라는 스타를 출연하면서 점점 인기를 끌기 시작하였고 야후를 밀어내고 2003년에는 1위를 등급 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기업이다.
세계를 무대로 나아가는글로벌 IT기업 네이버 입니다
네이버는 1997년 삼성SDS의 사내벤처인 '웹글라이더'에서 비롯되었다. 벤처 붐이 일던 당시 이해진을 비롯한 삼성SDS직원들은 사내 공모를 통해 사내벤처로 선발되어 지원을 받아 1998년 1월 첫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에 따라 창업 멤버[1]들은 1999년 분사하여 네이버컴을 설립하게 된다.
2000년에는 네이버가 한게임, 원큐, 서치솔루션을 인수하였는데, 당시 네이버컴의 기업규모는 작았고 자본력도 없었기 때문에 주식교환 방식으로 인수하면서 이해진 대표의 지분은 크게 낮아지고, 피인수 기업의 주주들은 네이버의 대주주가 된다. 한게임과의 합병은 빅딜로 여겨졌다. 네이버는 당시에 그다지 크지 않았다.
한게임은 1999년 12월 출시 이후 5개월만에 300만명의 유저를 모으는 건실한 기업이 되어 있었기 때문인데, 양측 모두 창업 초기라 시너지를 고려하여 합병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김범수 한게임 창업주가 네이버컴의 주주가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당시 엠파스는 "자연어 검색"으로 대히트를 치는데, 자연어 검색의 핵심 기술을 제공한 사람이 숭실대학교 이준호 컴퓨터공학과 교수였다. 이준호 교수는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와 서울대-카이스트 선후배 사이였는데, 그의 기술을 눈여겨본 이해진은 그에게 어마어마한 제안을 한다. "내 밑에서 일해보지 않겠는가, 그게 싫다면 독립 법인을 차리면 내가 10억을 투자하고, 연구비로 월 4,000만원을 지원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 제안을 받아들여 이준호 교수는 서치솔루션이라는 회사를 차려 검색엔진 개발회사를 차려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자본이 많지 않았던 네이버컴은 결국 주식교환 방식으로 서치솔루션을 자회사로 인수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이준호 교수도 네이버컴의 대주주가 되었다. 이것이 13년 후 기업분할의 단초가 된다.
이 당시까지는 인터넷 산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인지라 인지도도 이미 한메일과 다음 카페로 대중적으로 확산돼 있던 Daum과는 비교 자체를 할 수 없을만큼 낮았고[3] 인터넷이라는 존재가 일상 생활과 접점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신생 중소기업으로만 알려져 있었던 편이다.
이용자 수도 적은편이라서 네이버는 5위에 불과했다.[4] 그러나 2001년부터 한게임과의 합병으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불어일으키며 2002년을 전후하여 야후, 다음과 겨룰수있을 정도의 포털사이트가 되었고 코스닥에도 등록되었다.
네이버가 5위 포털사이트에서 경쟁자들을 제치고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게 된 계기는 2002년 10월 출범한 지식iN 서비스 덕분이었다. 이 서비스는 나중에 빅테크 들이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이후 급격히 이용자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이를 원동력으로 2003년 블로그와 카페 서비스를 개시하여 전지현을 전면에 내세운 광고로 공격적으로 마케팅하며 1위 검색엔진에 등극한다.
다음이 이미 내놓은 서비스와 내놓지 못한 서비스를 공격적으로 출시하면서 집토끼와 산토끼를 모두 잡아가는 공룡이 되더니 결국 2004년 6월 코스닥 시가총액 1위에 오른다. 기업의 규모가 커지자 2002년부터 머물렀던 테헤란로의 스타타워에서 떠나 2006년 분당벤처타운으로 자리를 옮긴다.
2010년 네이버는 현재 본사
한국에서 인터넷은 곧 네이버가 되었고, 네이버는 플랫폼 사업자로서 국내 인터넷 환경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쥐게 되었다. 2007년 대한민국 인터넷 대상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고, 2008년 코스닥에서 코스피로 이전하였고 이로써 완전히 주류 중견기업이 되었다. 2007년에는 창업주 이해진이 이사회 의장 및 최고전략담당으로 머물면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최휘영 대표가 경영을 맡았다.사세가 커지면서 전문회사를 설립하거나 모회사를 분할하기도 했는데, 2004년 게임 개발 스튜디오 NHN게임즈를 설립했고[5], 2005년 인터넷 서비스 전문 기 업 NHN서비스를 설립했으며, 2009년엔 NHN의 핵심수익사업인 광고부문을 따로 떼어내어 NHN 비즈니스 플랫폼(NBP)을 설립했다.
자본력을 갖춘 네이버는 성장 한계에 다다른 국내를 떠나 한게임을 필두로 해외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든다. 2005년에는 NHN USA를 설립하여 미국에서도 한게임 사업을 시작했다. 네이버는 국내에서 각종 컨텐츠를 꾸준히 제공하면서 이용자들을 묶어두고, 동시에 여러 광고 서비스들을 계속 출시해나가면서 수익성도 올라가게 된다. 또한 공격적으로 게임개발사, 검색엔진 개발사 첫눈 등 많은 벤처기업들을 인수하고 서비스를 늘려나가며 사세로 확장한다.네이버의 독점적 지위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들 중에서도 신문사들의 목소리가 특히 강했다. 미디어 환경이 매스미디어에서 인터넷으로 완전히 바뀌자 신문사들은 기존의 어젠다 설정 기능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광고수익도 떨어지기 시작했다.